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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여행기, 백암산케이블카 그리고 평화의 댐

화천 여행은 처음이었지만 ‘어디를 갈까’, ‘뭘 먹을까’ 검색하다 보니 호기심이 드는 곳이 제법 많았다. 그중 백암산케이블카를 첫 번째 목적지로 정했다. 여기저기 웬만한 명소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백암산은 도통 머릿속에 그려지질 않았다. 인생에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라는 수식어는 많은데, 그럴듯한…

고창 여행, 선운사, 고창읍성, 람사르습지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모두 16건이다. 그중 고창은 세계유산을 2개나 보유한 도시다. 2000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유적과 2021년 자연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갯벌이 고창에도 자리한다. 그뿐 아니라 인류무형유산인 판소리와 농악의 중심지이고, 세계기록유산인 동학 기록물도 꽤 있다. 변산반도 계곡과 바다의 절경이…

전남 순천여행, 순천만국가정원, 순천드라마세트장, 헤어질결심 송광사

세월의 깊이를 체득하는 방법 중 하나가 여행이다. 여느 때와 같은 하늘과 들녘, 그 k자리 그대로인 공간과사람, 반복되는 계절이라도 여행을 통해 다시 만나면 감회가 새롭다. 6년 전 순천을 찾았다.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과 자원의 보고인 갯벌, 도시재생 사업으로 역동하는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다시…

단종애사 청령포, 관풍헌, 단종의 장릉을 가다

조선의 왕릉은 대개 한양으로부터 80리 안에 있다. 그러나 단종의 장릉은 유배지 였던 강원도 영월에 있다. 장릉은 서울에서 500리나 떨어진 첩첩산중이며, 그 마저도 야산에 가매장된 지 300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왕릉으로의 모습을 갖추었다. 단종의 복위 작업은 왕릉 건립에만 그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강화 천도시기의 고려왕릉, 드라마 무인시대 희종

강화 천도 시기의 고려왕릉 강화도를 무대로 한 역사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 대몽항쟁 시기를 들 수 있다. 당시 고려는 강화도를 소도(小都)로 삼는 조치를 취했는데, ‘신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이 시기를 ‘강도 (江都)’로 명명하고 있다. 이로써 강화도는 38년간 고려의 수도로서의 기능을 했고, 강화도에 고려의 흔적들이 남겨지는 배경이 되었다. 특히 이 시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재를 이야기하라면 단연 ‘고려왕릉’을 들 수 있다. 흔히 왕릉은 왕은 왕이나 왕비, 대비 등이 묻힌 고분을 말하는데, 왕릉은 단순한 고분이 아닌 당시의 정치, 사회, 철학, 기술 등이 총 집약된 역사의 축소판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1818년 개성유수 조종영이 고려 왕릉에 대한 조사 사실을 아뢰게 되는데, 이 때 개경과 장단, 풍덕, 강화, 고양 등에 고려왕릉이 57릉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도 고려 왕릉에 대한 조사와 관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왕릉의 대다수는 옛 고려의 수도인 개성(개경) 인근에 위치해 있어 접근 자체가 어려운 곳이다. 이런 이유로 강화도에서 볼 수 있는 고려왕릉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처럼 강화도에 고려 왕릉이 위치하고 있는 것은 섬이라는 지형적인 특징이 한몫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평상시 강화도는 유배지로 활용이 되었고, 대몽항쟁 기간 중에는 수도로서 활용이 될 수 있었다. 현재까지 강화도에는 희종의 ‘석릉(碩陵)’을 비롯해 고종의 ‘홍릉(洪陵)’, 원턱태후 유씨의 ‘곤릉(坤陵)’과 순경태후 김씨의 ‘가릉(嘉陵)’등 총 4기의 고려 왕릉이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강화 천도를 단행할 때 고려 태조 왕건의 ‘현릉(顯陵)’과 그의 아버지이자 추존 왕인 왕륭(세조)의 ‘창릉(昌陵)’의 재궁이 함께 옮겨졌다. 또한 조선의 종묘 격인 ‘태묘(太廟)’가 함께 옮겨진 것은 강화 천도의 결정판으로, 이는 장기적인 대몽항쟁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1276년 긴 항쟁 끝에 고종은 태자 왕정(=원종)을 몽골로 보내 화의가 이루어져 고려의 국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고려 조정은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게 되는데, 이때 자연스럽게 ‘현릉릉’과 ‘창릉’역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고, ‘태묘’ 역시 개경으로 옮겨졌다. 이처럼 강화 천도 당시 세조와 태조의 능을 옮긴 것은 시신의 탈취를 막기 위한 것으로, 이는 과거 고구려의 사례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고국원왕 때 연나라가 침입해 미천왕의 능을 파헤쳐 그 시신과 왕의 생모를 데려간 일이 있었다. 당시 고구려는 미천왕의 시신과 왕의 생모를 돌려받기 위해 스스로 신하를 칭하며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다. 따라서 세조와 태조의 능을 옮긴 것은 혹여나 몽골의 군대에 의해 그 시신이 훼손 혹은 탈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실전되어 그 위치를 알기 어렵지만 고종의 아버지인 강종의 ‘후릉(厚陵)’역시 강화도에 있었는데,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고종의 재위 때에도 ‘후릉’은 여러 차례 도굴을 피하지 못했다. 또한 강화천도 기간 중 세상을 떠난 희종의 왕후 성평왕후(함평궁주) 임씨의 ‘소릉’ 역시 그 위치가 어디인지 알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와 관련해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와 고천리의 경계에 있는 ‘소릉고개’가 과거 ‘소릉’이 있다고해서 붙여진 지명이라는 점은 참고해 볼 만하다. 무신정권을 다룬 드라마 중 하나인 사극 ‘무인시대’는 고려 의종부터 최충헌의 죽음에 이르는 무신정권 시대를 보여주었다. 당시 동아시아의…

강화도 석조여래입상, 보문사, 강화도 고려왕릉

하점 봉씨와 장정리 석조여래입상 하점면 장정리 오층석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석조여래입상이 세워져있다. 이곳 역시 고려 왕궁에서 가까운 봉천산에 속한 또 다른 계곡을 끼고 사찰이 세워졌다는 증거의 장소이다. 이 석불상은 두꺼운 판석위에 조각된 고려시대의 석조여래입상으로 전체적으로 장대하고 불신의 비례가 좋은…

강화도 전등사, 정수사, 봉은사터

조선왕조를 지킨 강화도 전등사 강화도의 동남부에는 정족산이 우뚝 솟아 있고 이 산 아래 정족산성이 산허리를 두르고 있다. 또한 산성 안에는 강화도에서 가장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전등사’가 자리하고 있다. 언제부터 이 사찰이 세워졌는지 알 수 없으나 고려왕조가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원종…

꽃 처럼 아름다운 강화도 여행

이 땅의 중부 서해 바다로 흘러드는 예성강, 임진강 그리고 한강.., 이 세 강물은 국토의 중부 위아래 지역을 굽이쳐 흐르다 약속이나 한 듯 인천 앞바다 한 곳으로 흘러들며 삼 형제처럼 상봉을 한다. 그 만남의 장소에서 숨가쁜 강물이 쉬어가도록 자리한 커다란 섬이…

떠나자 지상낙원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의 삼원색은 초록과 파랑, 빨강이다. 울창한 숲, 깊은 바다, 용암이 가득 고인 화산화산…. 기후도, 환경도, 동물도 낯선 대자연이다. 운무 낀 상록수림에는 화려한 희귀 조류가 서식하고, 황금빛 해변에서는 바다거북이 산란한다. 도심 밖 숲은 나무늘보와 원숭이의 영역. 화산이 뿜어낸 재와 용암은 옥토를…

여름엔 바다와 젊음이 있는 곳 양양으로

여름을 사랑한다. 더위를 피해 바다로 산으로 떠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계절이 어디에 있을까. 해는 길고 열일한 후 맞는 달콤한 휴식을 기대한다. ‘올여름 휴가는 어디로 갈까?’ 내리쬐는 햇살이 뜨거워 어느새 한여름이 바짝 다가왔음을 실감하는 순간부터 몇 번이나 떠올린 행복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