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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여행, 윤선도, 녹우당, 초의선사 발자취

녹차는 4월 말경 차나무에서 딴 여린 잎을 덖어 우린 것을 최고로 친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막 자란 새잎이 향도 진하고 맛도 좋은 이유다. 차나무는 은근히 까다로워 한겨울에 기온이 너무 떨어져도 안 되고, 강한 볕이 바로 내리쬐는 것보다 은은한 볕과 적당한 습도가 있는 환경에서 잘 자란다. 뿌리가 곧아서 돌이 많은 척박한 땅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성과 하동, 제주 등 사계절 따듯한 남도 몇 곳의 너른 차밭이 유명하다. 그리고 또 한 곳, 보물 같은 차의 고장이 전남 해남이다. 사실 해남은 우리나라에 차 문화를 부흥시킨 초의선사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차 역사가 시작된 본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설렘 가득한 이 계절, 홀리듯 땅끝 해남을 찾았다.

꽃향기 가득한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KTX를 타고 목포까지 2시간 30분, 목포에서 차를 빌려 50분 정도 달리니 어느새 마을 어귀에 닿았다. 운 좋게도 마침 매화가 한창일 때라 보해매실농원을 먼저 찾았다. 매년 매화가 만발하는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일반인에 개방하는 농원은 이미 꽃망울을 터트린 청매와 홍매, 백매가 어우러져 향기로운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국내 최대 규모인 46ha(46만 ㎡)를 가득 메운 꽃 잔치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벅찼다. 매화나무가 만든 터널을 거닐며 흩날리는 꽃비를 맞노라니 ‘이래서 봄이 좋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몇 날 며칠 미세먼지 경보 문자를 받던 터라 “정말 봄이 지긋지긋하다”는 누군가의 푸념에 동조한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활짝 피지 않은 매화 봉오리를 따다가 차로 우려 마시면 입 안 가득 봄을 머금을 수 있을 것 같아 욕심이 났지만, 눈과 코에 담뿍 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농원 주변은 먼저 피기 시작한 동백나무가 어우러져 멋을 더하고 있었다.

이번에 차에 대해 공부하면서 동백꽃도 차로 마시는데, 붉은 꽃잎을 말려 하루에 한두 잔 마시면 피를 맑게 하고 이뇨 작용을 돕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회가 되면 동백차도 꼭 한잔 마셔봐야겠다. 건강에 이로운 효능보다 아마 붉은 꽃잎과 달달한 향내에 취해 마음을 위로받는 효과가 먼저 느껴질 듯싶다. 매화와 동백꽃이 질 무렵이면 두륜산도립공원 유채축제와 가학산자연휴양림 일원에서 펼쳐지는 흑석산철쭉제가 뒤를 이어 봄을 선물할 테니 앞으로도 두어 달은 꽃향기가 가득할 해남, 봄에 꼭 한 번 다시 찾고 싶은 이유다.

푸른 비가 내리는 봄 풍경

해남읍 쪽으로 가는 길에 크고 작은 차밭이 종종 눈에 들어왔다. 보성이나 제주처럼 관광지 같은 웅장한 모양새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잠시 머물러 은은한 향을 맡으며 산책하기에 좋을제법 운치 있는 곳이 많았다. 한국제다의 제3다원이 위치한 연동리 일원을 돌아보다 고산 윤선도유적지에 닿았다. 학창 시절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글로 노래한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를 배우며 잊지 않으려고 몇 번씩 외우던 시조의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600여 년간 해남 윤씨 어초은파 종택의 역사와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조선 시대 양반 사대부가의 전통 가옥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해남 윤씨의 종택인 녹우당은 개방되지 않았기에, 대신 유물전시관에서 아쉬움을 달랬다.

전시관에는 윤선도의 문학 작품 외에 파격적인 구도와 대담함이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 선생의 예술 세계도 전시돼 있었다. 공재는 고산의 증손자로,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한 윤선도의 뒤를 이어 ‘나물캐는 두 여인’, ‘짚신 삼는 노인’, ‘목기 깍기’ 같은 풍속화를 최초로 그린 인물이다. 풍속화로 유명한 김홍도와 신윤복보다 앞선 시대에 백성의 삶에 애정을 갖고 화폭에 담아낸 것이기에 더의미 있는 작품들이다. 이 외에도 전시관에는 윤두서의 손자인 청고 운용의 ‘미인도’, 옥동 이서가 쓴 녹우당 현판 등 윤씨가에서 대대로 간직해온 문화유산 4,6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녹우당은 4월부터 6월경에 걸쳐 내리는 푸른 비, 즉 ‘녹음이 우거진 때 내리는 비로 사람의 마음을 흠뻑 적셔주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을 거라는 해석이 있다. 내부 곳곳을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녹우당 뒷길을 따라 비자나무숲까지 산책하다 보니 푸른 비가 내리는 봄 정취에 취해 그 해석에 기꺼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초의선사의 발자취를 좇아

차를 좋아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이 해남을 찾는 이유는 초의 선사의 발자취를 좇기 위해서 초의선사는 조선 시대 불교 억제책과 함께 쇠퇴한 우리의 차 문화를 부흥시킨 인물이다. 두륜산은 초의선사가 40여 년간 머문 일지암이 자리한 곳으 로, 한국 차의 성지로 통하는 곳이다.

일지암을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산을 좋아하는 이라면 여유롭게 도립공원 일대를 등반하고 빼어난 절경을 감상하며 봄을 만끽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장 빠르게 닿을 수 있는 길은 대흥사까지 차를 이용하고, 이후 암자까지 걸어 오르면 된다. 처음에는 대흥사까지만 살펴볼 작정이었으나 지도를 살펴보니 1km가 채 안 되는 구간이기에 용기를 내 올라가기로 했다. 산길이기는 하지만 걷기 편하게 포장돼 있어 만만하게 생각했다. 중반쯤 올랐을 때부터 돌아가고 싶을 만큼 경사가 급해져 조금 당황했다. 급할 것 없다 마음먹고 30여 분쯤 살살 걷다 보니 드디어 초가로 지은 암자가 나타났다. 초의선사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우리나라 차에 대한 예찬을 담은 <동다송>과 다도에 관한 내용을 엮은 <다신전>을 저술했다. 화재로 인해 소실된 일지암을 차를 사랑하는 이들이 뜻을 모아 초의선사의 생가에서 수집한 가옥 재료로 복원한 것이 현재의 일지암이다. 암자에서 멀리 내다보면 산자락에 폭 안긴 듯한 고즈넉한 정취에 명상이 절로 될 듯하다.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여러 선인과 차를 마시며 우정을 나눴을 초의선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일지암 앞에는 과거 그가 애정을 가지고 키웠을 차나무도 다시 가꿔놓았다. 일정이 맞으면 다양한 차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해보자. 매년 4~5월 중에 두륜산도립공원에서는 6만 6,000㎡에 이르는 차밭을 개방하고 찻잎 수확 체험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 개인이나 단체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옥천면에 위치한 은향다원에서는 유기농 차밭과 다원에서 꽃차와 녹차를 두루 경험할 수 있고, 차밭을 낀 펜션 설아다원에서는 찻잎 따기, 봄 햇차 만들기는 물론 판소리와 한옥 체험까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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