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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 지상낙원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의 삼원색은 초록과 파랑, 빨강이다. 울창한 숲, 깊은 바다, 용암이 가득 고인 화산화산…. 기후도, 환경도, 동물도 낯선 대자연이다. 운무 낀 상록수림에는 화려한 희귀 조류가 서식하고, 황금빛 해변에서는 바다거북이 산란한다.

도심 밖 숲은 나무늘보와 원숭이의 영역. 화산이 뿜어낸 재와 용암은 옥토를 만들고 커피를 키워낸다. 국토의 약 30%가 보호구역인 나라, 사시사철 푸르른 생태 여행지, 코스타리카로 향했다.

푸라 비다, 언제나 괜찮아

코스타리카 수도 산호세는 여느 도심처럼 매캐하다. 버스가 배기가스를 잔뜩 뿜어내며 스치듯 지난다. 미간이 찌푸려지지만 이내 펴진다. 코스타리카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 일찌감치 ‘푸라 비다(Pura Vida)’를 외웠다. 직역하면 ‘행복한 인생’, ‘순수한 삶’이다. 코스타리카에서는 인사할 때나 헤어질 때, 고마울 때나 미안할 때 모두 ‘푸라 비다’를 말한다. ‘좋은 하루’, ‘잘될 거야’,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정도 의미로 사용한다. 그 말마따나 공기가 좀 나빠도 ‘푸라 비다’다. 잠시 매캐하더라도 금세 괜찮아질 테니까, 조금만 더 가면 폐부까지 정화할 수 있는숲이, 눈이 맑게 트이는 해변이 반겨줄 거니까.

화산의 콧김 속으로

포아스 화산은 도심지에서 가장 가까운 활화산이다. 70여 년 전 맹렬하게 폭발해 미국 땅까지 들쑤셨던, 심지어 2019년에도 용암을 분출해 두려움에 떨게 한 그 화산이 산호세 중심부에서 겨우 50km 거리에 있다. 도심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정도 달리면 분화구 근처 주차장까지 다다를 수 있다.

최근 포아스 화산은 숨을 고르는 중. 간간이 증기를 내뿜고, 그보다 더 가끔은 검붉은 유황 진흙을 뱉어내며 쌕쌕거린다. 분화구는 너비 1.3km, 깊이 300m에 달한다. 두려움과 경외감을 동시에 일으키는 규모다. 민트색을 띠는 화산호(화구에 물이 고여 생긴 호수) 물은 달콤하면서 알싸할 것 같다.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수증기 덕분에 더 따듯하고 신비해 보인다. 목숨이 서너 개쯤이면 더 가까이 다가가 냄새도 맡고 맛도 보았을 텐데.

전망대 한쪽 팻말에 ‘Máximo 20 Minutos’라고 적혀 있다. 20분 이상 머무르지 말라는 안내다. 화산이 살아 있는 만큼 유독가스와 분진이 공기 중에 떠다니기 때문이다. 오래노출되면 어지럽고 메스꺼울 수 있으니 주의하자.

일정이 여유롭다면 포아스 화산보다 더 큰 이라수 화산도 가볼 만하다. 현지에서 ‘천둥의 끝’이라고 하는, 코스타리카 최고 높이(3,432m)의 활화산이다. 이라수 화산은 주차장에서 1km 정도 걸어 올라가면 분화구를 볼 수 있는데, 날씨 운이 좋다면 카리브해와 태평양까지도 내려다볼 수 있다.

산호세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의 라포르투나도 한때 코스타리카 화산 여행 거점으로 여겨졌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아레날 화산에서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경부터 화산 활동이 잦아들었고, 지금은 용암 끓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물론 화산이 식었다고 해서 매력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거대한 호수 너머 우뚝 솟은 아레날 화산은, 그 형태와 색이 어찌나 비현실적인지 컴퓨터 윈도 배경화면처럼 느껴진다. 깊은 협곡의 장엄한 폭포도, 지열로 데워진 천연 온천에서의 수영도 특별한경험이 된다.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마을 역시 흐뭇하게 되새길 만한 풍경. 코스타리카에서 단 한 곳만 선택해 가야 한다면, 고민 없이 라포르투나로 향할 것이다.

안개 속에서 잉태한 숲

마을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지만 숲에 가까울수록 어둑어둑해진다. 강렬한 햇살도 습기에 산란 몽환적으로 퍼진다. 코스타리카를 상징하는 명소, 운무림은 이름 그대로 1년 내내 안개가 가득하다. 숲에는 포유류 120여 종, 조류 420여 종, 파충류 100여 종, 양서류 60여 종이 눅눅한 공기와 이끼에 기대어 살아간다. 정부가 개발을 제한하고 철저히 관리하는 덕에, 코스타리카 운무림은 고유 생태계를 오롯이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은 몬테베르데다. 1980년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대대적으로 소개하면서 급부상했다. 중앙아메리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희귀 새 케트살을 비롯해 나무늘보, 원숭이, 박쥐 등을 관찰하려고 세계 곳곳에서 여행자와 과학자가 모인다. 단, 몬테베르데 트레일 코스는 동시 입장 인원을 260명으로 제한한다. 그 안에 들지 못하면 누군가 여정을 끝내고 나오길 기다려야 한다. 선착순 마감이니 아침 일찍 출발하거나, 홈페이지(cloudforestmonteverde.com)에서 미리 티켓을 구입하길 권한다.

몬테베르데 투어는 여러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나비정원, 박쥐정글, 난초정원 등을 지나는 트레킹, 짚라인 등으로 숲을 통과하는 캐노피 투어 등이다. 액티비티를 즐긴다면 캐노피 투어를 꼭 경험하기를. 무자비한 흔들다리 건너기를 비롯해 라펠하강, 타잔 스윙, 슈퍼맨 비행까지 스릴 넘치는 체험이 기다린다. 프로그램 구성은 업체마다 다른데, 장장 2시간에 걸쳐 17가지를 연달아 진행하는 곳도 있다.

운무림의 젖은 땅을 지그시 밟고 싶다면 몬테베르데보다 산타엘레나 보호구역을 추천한다. 몬테베르데의 연간 방문자는 20만 명에 달하지만, 산타엘레나 보호구역은 2만 명이 채 안되어 훨씬 조용하다. 운무림의 면적은 3.1k㎡으로 아담하지만, 트레일 코스가 12km 이상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단, 사람의 손길이 덜 닿은 만큼 진흙 길이 많으니 방수 운동화는 필수다.

서핑, 젊음, 열정

코스타리카는 해변을 뜻하는 ‘코스타(Costa)’와 풍요로움 혹은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리카(Rica)’를 합친 단어다. 이름 그대로 수려한 바다가 코스타리카의 허리를 감싸고 있다. 인파가 몰리는 명소로는 니코야 반도의 타마린도와 말파이스 해변, 태평양 연안의 마누엘 안토니오 국립공원과 도미니칼 해변, 코스타리카 남부의 파보네스가 꼽힌다. 이 중 말파이스와 도미니칼, 파보네스는 서핑의 성지다. 코스타리카서 가장 젊고 뜨거운 지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파이스는 서핑 산업이 도시 전체를 견인할 정도. 서핑 숍과 서프 스쿨이 많고, 파도가 순한 편이라 초보자가 서핑을 배우기에 이상적이다. 도미니칼은 해안 가까이서 부서지는 도(비치 브레이크)와 해안가에 비스듬히 도달하는 파도(포인트 브레이크)로 명성이 자자하다. 파보네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 레프트핸드 파도가 일기로 유명한 곳. 타이밍이 맞으면, 세계 각국 서퍼의 수준급 묘기도 볼 수 있다. 복을 가르치는 자연 속에서
탁 트인 바다 앞에서는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금빛 낙조가 깔린 해변에서는 더 느긋한 마음이 된다. 숲속에서는 좀 겸손해진다.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 속에서는 저절로 온순해 진다. 바다와 숲을 누비다 보면, 코스타리카인의 삶의 방식이 자연에서 비롯함을 알게된다. 지진이 잦고 종종 허리케인이 마을을 휩쓸고, 화산 폭발의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는 환경에서도 코스타리카인은 나긋나긋 살아간다. 이해하고 인정하며 순응하고 행복하게. 스타리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1949년에는 군대마저 없애고 예산을 무상 교육·의료 서비스로 전환했다. 산호세는 빈곤율이 높고 도둑이 많지만, 코스타리카는 중남미를 통틀어 치안이 가장 좋은 편이다. 행복지수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다.

코스타리카 여행에서 꼭 배울 게 있다면 이런 낙천적 마음가짐일 것. 한 번 더 읊어보자. ‘푸라 비다.’ 언제 어디서나 잘될 거라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