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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에 따른 근로시간 변화의 검토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일하는 방식의 변화들은 막연하게 상상만 해 왔던 비대면 시대의 서막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이제 기업과 근로자들은 성과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에 관한 논의를 통해 일하는 시간을 넘어 방식과 수단, 성과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성할지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다.

근로시간 규율의 가장 큰 목표

이러한 방향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어떠한 수단을 활용해 이러한 목적과 방향을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다. ‘주69시간 근무제’라인식되는 이번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비판이 단순히 노동계의 저항이나 정치적 공세인지, 아니면 노동 시장의 구조 개혁을 도출하는 데 본질적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있다. 물론 이러한 본질적 한계는 단순한 정책 수단의 타당성에 관한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무리 합리적인 방안이라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문화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 물정 모르는 규범으로만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규율의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일까? 단순화하자면, 적어도 그 핵심에는 규제를 통한 근로시간 단축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ILO의 최초 협약인 1919년 제1호 ‘근로시간(공업 부문) 협약’으로부터 시작된 근로시간 규율은 단순히 ‘근로시간 제한 규제’만을 목적으로 한것은 아니며, 지난 10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산업 구조와 사회 변화 그리고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의해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해 왔다.

최근 근로시간 개편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물론 노동정책에서 임금과 근로시간 문제가 이슈가 되지 않았던 적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노동정책을 넘어 가장 큰 사회적 이슈의 하나로 자리 잡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담론과는 달리, 근무 방식 변화의 틀인 근로시간제도의 개편 논의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2023년 3월6일 발표한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을 살펴보면, ‘근로자의 삶의 질 제고와 기업의 혁신·성장’을 목표로 글로벌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근로시간제도 선진화를위한 △근로시간 선택권(시간주권) 확대 △근로자 건강권 보호 강화 △휴가 활성화를 통한 휴식권 보장 △유연한 근무 방식 확산을 ‘개편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근로시간, 규제에서 규율로의 전환

서유럽, 미국 등 소위 선진국을 살펴보면, 1970년대까지는 주로 노동운동의 요구에 따라 근로시간의 길이를 줄이면서 휴일과 휴가를 확대·보장함으로써 근로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방향이 대세였다고 평가할수 있다. 물론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생산 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동시에 진행되었기에 근로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 단축 전후를 비교할 때 생산량이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더구나 기독교 전통이 강했던 서유럽에서는 종교계의 요구로 안식일인 일요일에는 휴일근로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대부분의 가게들도 문을 닫고 쉬어야만 도록 법을 정하거나 사회적 관행이 만들어졌다.

즉, 자연스럽게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휴일이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관행은 근로자냐 자영업자냐에 관계없이 익숙해지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소득 수준에 연동해 근로시간 단축 정도가 영향을 받는 경향도 나타났는데, 대략적으로 서유럽, 미국 등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달했던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연간 근로시간은 이미 1,700~1,800시간 사이로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서유럽에서도 1990년대부터 근로시간 단축 움직임은 약화되고, 기존 표준화된 근무 형태(주 5일·9~17시 근무) 대신 시장과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맞추기 위한 방안들을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이는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들이 도입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러한 큰 흐름은 근로시간

규제 완화라고 설명되기도 하고, 더 나아가 근로시간의 ‘규제에서 규율로의 전환’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다양한 교대제를 통해 서비스 제공 시간을 늘리고, 고객들의 수요가 몰리는 때에 서비스 제공의 양을 맞추기 위해 연간근로시간제, 근로시간계좌제, 보상휴가제도 등이 도입되었다. 시간제 근로 활용이 늘었으며, 주말근로, 야간근로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각종 할증률 등이 설계되고 도입되기도 했다. 또한 근로자 개인이나 가정의 필요에 따라서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근로자들의 권한이확대된 것도 이 시기에 나타난 특징이다.

낡은 틀로는 새로운 변화를 담을 수 없다

우리의 논의로 돌아오면, 근로시간을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이 1953년 제정된 이래, 여러 차례 규정의 변화는 있었지만 큰 틀에는 변화가 없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소위 낡은 틀로는 새로운 변화들을 담을 수 없다는 미래 담론에서 근로시간제도는 항상 비판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근로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의 큰 흐름을 몇 가지 짚어보면, △법정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로 시간제의 도입 △주 최대 근로시간 논의 △휴가제도 개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핵심은 법정근로시간 단축이다. 그리고 그주요 변천 과정을 요약하면,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시 1일 8시간, 주 48시간의법정근로시간을 채택하고, 이후 1989년 1일 8시간, 주 46시간, 1991년 주 44시간, 2003년 주 40시간(주5일제)으로 변화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법정근로시간 단축 과정과 함께 유연근로시간제의 도입과 휴가제도 개편이 병행되어 왔으며, 자연스러운 관행보다는 제도 개혁이 먼저 선행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모습은 주5일제 도입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2003년 8월 29일 국회는 법정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주 40시간(주5일제)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개정안은 기업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주 5일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한편, 근로 시간 단축에 대한 경영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휴가제도와 탄력적 근로시간제 또한 개정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휴가제도에 관한 변화다. 주5일제 도입과 함께 월차휴가가 폐지되고 연차휴가가 1년 근속 10일에서 15일로 늘어나는 대신 1년당 1일 가산에서 2년당 1일 가산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휴가사용촉진제도가 도입되어 사용자에게 적극적으로 사용을 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금전 보상 의무를 면제하는 방식으로 휴가를 소진하는 제도가 나타났다. 이처럼 휴가의 부여와 사용에 있어서 다양하고 복잡한 제도들은, 노사의 합리적인 타협점으로 보일 수 있지만, 기본적인 근로 조건을 법률적 분쟁의 대상으로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 측면이 크다.

한편 지난 정부의 1주 최대 52시간제 도입 역시, 과거부터 문제되어 왔던 법률 분쟁에서 기인한다. 2008년 경기 성남시 환경미 화원의 가산임금 소송에서 나타난 주 최대 근로시간 논쟁은 “1주 40시간과 연장근로 상한 12시간을 합쳐 1주 최대 근로시간은 52시간이라는 주장과 위의 ‘1주’는 휴일(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5일이므로 5일 동안 52시간에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 8시간씩 합해 총 68시간이라는 주장”이 대립해 왔으며, 10여 년의 논의 끝에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이라는 입법적해결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처럼 근로시간의 법률 분쟁화는 현실에서 다양한 근무 방식의 변화를 시도하는데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근로시간 규정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법률적 리스크가 제거된 상태에서만 다양한 근무 방식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다양한 근무 방식의 변화가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제 등 제도로 보장된 일정한 틀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접근법은 한계가 있다. 근로시간의 체계 개편은 다양한 ‘노동의 변화’를 이해하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오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근로시간법제는 보편과 상식에 부합하고, 노동관계를 규율하는 실효성 있는 법률을 구축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업주와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행위 지침이, 그 위반에 관해서는 형사 처벌을 포함한 제재조치가 수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명확한 법률 언어로 획일적이고 강행적인 규제를 한다면, 노동 현장에서 법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법이 허용하는 형태를 모호하게 규정’하기보다는 ‘법이 금지하는 형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