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사랑한다. 더위를 피해 바다로 산으로 떠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계절이 어디에 있을까. 해는 길고 열일한 후 맞는 달콤한 휴식을 기대한다. ‘올여름 휴가는 어디로 갈까?’ 내리쬐는 햇살이 뜨거워 어느새 한여름이 바짝 다가왔음을 실감하는 순간부터 몇 번이나 떠올린 행복한 고민이다. 후끈한 여름 더위를 식힐 요량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휴가지를 물색하다 강원도 양양을 찾았다.
청량한 바다와 푸르른 산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반기는 곳이다. 이미 여러 번 다녀왔음에도 SNS에 연이어 올라오는 신상 카페와 포토 스폿에 매번 설레는 휴가지다.
젊음의 행진 양양
양양은 젊음의 바다로 통한다. 파라솔만 늘어선 동해의 여느 해변과는 다르다. ‘동해의 보라카이’로 불릴 정도로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양양을 이토록 특별하게 만든 대표 명소가 중광정해수욕장에 조성한 서피비치다. 야자수로 만든 그늘막과 해먹이 동남아 휴양지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해변의 펍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 흥을 돋운다. 서핑 전용 해변으로 문을 연 서피비치에서는 누구나 서핑 강습을 받을 수 있다.
운동신경이 워낙 둔한 탓에 ‘수영도 못하는데 서핑을 어떻게 해?’라는 생각에 그동안 별 관심이 없었는데,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노니는 서퍼를 보면서 처음으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서핑강습을 다음 기회로 미룬 대신 요즘 핫한 요가 체험을 신청했다. 지난해 처음 서피비치에서 시작한 이스트요가 체험 클래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체험거리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구령 삼아 온전히 자연의 숨을 들이마시는 시간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1시간가량 이어지는 클래스 내내 자연이 주는 놀라운 치유력을 실감한다. 서피비치에서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참여하는 일출 요가와 저물녘에하는 일몰 요가 모두 매력적이다.
인구해수욕장과 죽도해수욕장도 서퍼에게는 최고의 놀이터로 통한다.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서핑뿐 아니라 해수욕을 즐기기 좋고, 깨끗한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풍경도 빼어나다. 두 해변을 잇는 500m 남짓한 거리는 일명 ‘양리단길’로 불리는데, 백사장 주변으로 서핑 숍과 신상 카페, 맛집 수십 곳이 즐비해 온종일 지루할 틈이 없다. ‘일반 음식점이므로 춤추는 행위가 금지됩니다. 춤을 추면 제지당할 수 있습니다.’ 인구해변에서 포토 스폿으로 유명한 카페 플리즈웨잇의 안내판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춤추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런 푯말을 붙여놨을까. 웃음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절로 생기는 흥을 주체할 수 없는 힙한 곳이 바로 이곳, 젊음의 바다. 양양이라는 사실에 공감이 들었다.
바람이분다 살아야겠다
서핑 명소로 각광받기 전에도 이곳 양양은 반도 최고의 휴가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는 곳마다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절경이 펼쳐지니 말이다. 해안 절벽 명소인 낙산사와 하조대에 오르면 탁 트인 바다 경치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온갖 시름이 잊히는 듯하다. 풍수지리에 대한 안목은 없어도 단번에 명당이라는 게 느껴진다. 양양 8경 중 하나인 낙산사는 바닷가에 위치한 대표 관음성지 사찰로 신라시대 의상 대사가 세운 천년고찰이다. 울창한 나무 사잇길을 따라가다 보면 일출 명소로 꼽히는 의상대, 낙산 정상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해수관음상, 천연 동굴 위에 지은 암자인 홍련암 등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이 줄을 잇는다.
모두 해안 절경과 함께 감상할 수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둘러보기 좋다. 하조대해수욕장 인근의 하조대 정자와 하조대 등대, 전망대도 양양의 오랜 명소다. 하조대 정자에서 바라보면 암석 위에 자란 수령이 약 200년 된 노송이 푸른 양양 바다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하얀 등대로 이어진다. 전망대에 올라 바다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여정도 필수 코스다.
휴휴암
‘쉬고 또 쉬어 가는 곳’이란 의미를 지닌 휴휴암은 고요한 시간을 보내기 좋다. 본래 바다를 끼고 있는 작은 암자였는데 1999년 부처 형상의 바위가 발견된 이후 찾는이가 많아지면서 규모가 커졌다. 휴휴암 아래 바닷가에 길게 누워 있는 돌은 흡사 부처를 닮았고, 그 앞 바위는 부처를 향해 절하는 거북을 연상시킨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찰과 지혜관세음보살상 그리고 너른 바위 주변으로는 황어 떼가 몰려들어 볼거리를 더한다. 남애항은 삼척 초곡항과 강릉 심곡항과 더불어 강원도 3대 미항 중 하나다.
전망대에 오르면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비교적 한적하고 고요한 어촌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양양의 바다가 뜨겁고 열정적이라면 산과 계곡은 한여름에도 땀 흐를 새 없이 차갑고 시원하다. 청정 1급수를 자랑하는 공수전계곡과 다량의 철분과 탄산수 성분의 물이 솟아 나오는 오색약수터,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아늑한 쉼터가 되어주는 미천골자연휴양림도 최고의 여름휴가지로 사랑받는 명소다.
휴가의 설렘
양양 해변에 어둠이 깔리면 낮과는 전혀 다른 매력의 풍경이펼쳐진다. 마치 곱게 화장한 여인의 모습처럼 화려하다. 환한조명이 해변을 밝히고, 철썩이는 파도와 음악 소리가 어우러져 밤바다의 낭만을 더한다. 낮에 서핑을 즐기던 이들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 하나둘 다시 해변으로 모여든다. 서피비치에서 눈여겨본 선셋 바를 다시 찾았다. 낮에는 가족 단위여행객도 편히 쉬었는데, 밤에는 아이 동반을 금하기 때문에 청춘을 위한 핫 플레이스로 변신한다. 성수기에는 이곳에서각종 페스티벌과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하이볼 한 잔을 시켜놓고 탁 트인 야외 테라스석에 앉았다. 유쾌한 이야기가 오가는지 연신 웃음을 나누는 무리도 보이고, 이 밤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열심히 포즈를 취하는 젊은이도 보인다. 시선 멀리에서는 ‘썸’을 타는 듯한 커플이 해변을 거닐며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에 덩달아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휴가는 치열한 일상에 대한 보상과 같다. 휴가지로 선택한 양양이었기에 그냥 그렇게 한참을 머물렀다. 굳이 뭔가를 하지 않으려 했음에도 어느새 가슴속에는 한여름 밤의 아름다운 추억이 새록새록 쌓인다.
-대전소식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