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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여행, 선운사, 고창읍성, 람사르습지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모두 16건이다. 그중 고창은 세계유산을 2개나 보유한 도시다. 2000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유적과 2021년 자연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갯벌이 고창에도 자리한다. 그뿐 아니라 인류무형유산인 판소리와 농악의 중심지이고, 세계기록유산인 동학 기록물도 꽤 있다. 변산반도 계곡과 바다의 절경이 어우러져 세계지질공원에 이름을 올리고, 운곡람사르습지는 생물권 보전지역에 속한다. 고대 문명 도시 로마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조건이다. 유구한 역사 속 찬란한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을 고스란히 품고 보전해온 곳, 고창에선 발길 닿는 곳마다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1 고인돌과 갯벌의 고장 고창

고인돌공원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직한 산기슭에 크고작은 돌을 얹어놓은 고인돌 유적을 볼 수 있다. 요즘으로 치면 공동묘지쯤 되는 곳이었을까? 어떤 이유로 이렇게 많은 무덤이 이 지역에 포진했는지 정확한 연원을 알 수는 없지만 거대한 바위가 듬성듬성 놓인 풍경이기이하고 신비하기만 하다. 주진천 주변에 모여 살던 아주 먼 옛날 선인의 흔적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된 것이리라 짐작한다. 선사시대 무덤인 고인 유적은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고창과 더불어 전남 화순과 인천 강화에도 고인돌이 분포하는데, 고창의 고인돌 규모가 가장 크고 많다. 죽림리와매산리 일대에 무려 500여 기가 분포하는데 탁자식(북방식), 바둑판식(남방식) 등 주변국에서 발견된 다양한형태의 고인돌을 고창에서는 대부분 볼 수 있다.

고인돌 유적지 입구에 2008년 개관한 고인돌박물관이 자리한다. 청동기 시대의 각종 유물과 생활상을 체험하고, 세계의 고인돌 문화를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 무덤이라는 죽음의 공간을 뛰어넘어 고인돌에 깃든 문화와 역사의숨결을 체험할 수 있다.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고, 2021년 한국의 갯벌이 자연유산으로 선정됐다. 한국의 갯벌은 서천·고창·신안·보성·순천에 이르는 서남해안의 드넓은 연안에 펼쳐져 있다. 고창갯벌은 계절에 따라 펄갯벌, 모래갯벌, 혼합 갯벌로 퇴적 양상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희귀한 지형이다. 모래와 조개의 퇴적체인 셰니어가 형성되어 움직이는 섬이 있는 것도 고창갯벌의 자랑이다. 광활한 갯벌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어우러져 살아간다. 농게와 칠게가 손톱만 한 구멍을 내어 수시로 드나들고, 붉게 물든 단풍처럼 분홍빛으로 물든 해홍나물과 칠면초가 화사한 빛을 뿜어낸다. 검은머리물떼새와 저어새, 황새 무리가 날아와 휴식을 취하는 장관도 마주할 수 있다. 저물녘이 되면 낙조가 하늘과 갯벌을 뒤덮어 황홀한 감동을 선사한다. 갯벌센터에서 자전거나 킥보드를 대여하면 드넓은 갯벌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

2. 판소리의 본고장 고창

고창은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판소리와 농악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가루지기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등 판소리 여섯 마당을 집대성한 명창 신재효 선생과 현대 판소리의 최고 명인으로 불리는 김소희 선생을 배출했다. 고창읍성 인근에 남아 있는 신재효 고택은 그의 문하생이 머물던 사랑채로, 소리를 배우려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자료와 일화에 따르면, 원래 이곳은 상당한 규모의 가옥과 부속 시설이 있던 곳으로 기생, 광대, 소리 연습생으로 구성된 50여 가구가 공동체를 이뤄 살며 소리를 익혔다고 전해진다. 판소리박물관을 찾으면 신재효 선생의유품과 판소리 자료 등 의미 있는 전시물 1,500여 점을 수 있다. 김소희 생의 생가도 흥덕면 사포리에 복원해놓았으니 함께 둘러볼 만하다.

3. 고창읍성

고창읍성은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즐기기 다. 조선시대 왜적의 침략을 막기위해 전라도민이 돌을 하나하나 날라 쌓아 올린 읍성은 선조의 슬기와 눈물이 서린 문화재다. 길이 1,684m, 높이 4~6m의 성곽을 한 바퀴 빙 돌아보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 예부터 이곳에선 머리에 돌을 이고 성곽을 돌아보는 답성놀이를 즐겼다. ‘돌을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와 도전 욕구를 자극한다. 성곽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울창한 소나무 숲과 대숲이 이어져 운치 있는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성내에는 동헌과 객사 등 관아 건물 14동을 복원해 시간을 거스른듯한 옛 정취가 물씬하다. 초가을에 만발했던 꽃무릇은 모두 지고 없지만 맑은 도솔천과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울울창창한 숲, 고즈넉한 사찰이 언제나 반겨주는 선운사도 고창 여행의 필수 코스다. ‘선운’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으로, 선 운산 골짜기에 들어선암자가 90여 개에 달했을 정도로 큰 도량이었다. 지금은 백제 577년에 창건, 역사가 무려 1,500여 년이나 된 천년 고찰 선운사가 참선객을 반긴다. 선운사 뒤편으로 대웅을 호위하듯 감싼 동백나무 숲은 이미 유명하다. 눈 내리는 한겨울이면 붉디붉은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를 감상하려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웅전 앞에 놓인 만세루는 우리나라 사찰 누각 중 규모가 가장 큰 문화재로, 서로 다른 모양과 크기의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굳이 똑같이 다듬거나 맞추지 않아 더 멋스럽다.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대 상황과 이를 극복한 장인의 슬기로운 건축 솜씨가 돋보인다. 청정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태 문화 운곡람사르습지는 2011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 로 지정됐다. 이곳은 40여 년 전만 해도 방치된 논밭이었다. 저수지가 조성되어 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사람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자연은 스스로 동식물이 살아갈 환경을 만들었다. 수십 번 계절이 바뀌고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무르고 단단해지기를 반복한 자연에 동식물이 터를 잡았다. 멸종위기 야생종인 수달과 황새, 삵, 담비, 팔색조가 찾아와 어느새 동식물 800 여종의 소중한 서식지가 됐다. 운곡람사르습지는 저수지를 따라 조성된 길과 습지 사이사이에 조성된 데크 사이로 산책하기 좋다. 이곳의 주인은 엄연히 동식물이 되었으니 자연의 품을 가만히 걷고 명상하는 일정이면 충분하다.

4. 고창 선운사

운곡람사르습지 인근에는 고창의 선운산과 소요산, 심원갯벌, 명사십리, 구시포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병바위가 자리한다. 마치 병을 뒤집어 놓은 듯한 형상이라고 해서 이름 붙은 곳이다. 신선이 술에 취해 술상을 발로 찼는데 술병이 거꾸로 꽂혀 병바위가 되었다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진다. 멀리서 바라보면 한눈에 전설이 왜 생겼는지 알 만한 모습이다. 비바람에 깎이고 다듬어져 신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기암괴석인데,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보는 각도에 따라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유유히 흐르는 주진천을 내려다보는 모양이 인상적이다.

서해와 맞닿은 고창에는 길이가 무려 74km에 달하는 긴 해안선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갯벌과 백사장, 바다가 어우러져 휴양지로도 인기가 높다. 특히 구시포해수욕장은 울창한 송림과 풍경 맛집으로 통하는 구시포항이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서쪽 배경이니 천지가 붉게 물드는 저물녘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황홀하다.

짧은 시간 세계유산을 이토록 많이 만나본 때가 있었던가. 선조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과 함께한 잊지 못할여행이었다. 더불어 아들, 딸에게도 지금의 감동을 고스란히 물려주기 위한 실천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다짐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