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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여행기, 백암산케이블카 그리고 평화의 댐

화천 여행은 처음이었지만 ‘어디를 갈까’, ‘뭘 먹을까’ 검색하다 보니 호기심이 드는 곳이 제법 많았다. 그중 백암산케이블카를 첫 번째 목적지로 정했다. 여기저기 웬만한 명소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백암산은 도통 머릿속에 그려지질 않았다. 인생에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라는 수식어는 많은데, 그럴듯한 사진 한 장 보기가 쉽지 않았다.

백암산 케이블카

백암산이 비밀의 장소처럼 꼭꼭 감춰진 이유는 화천체육관에 위치한 매표소에 도착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백암산케이블카는 군 관할 지역이라서 사전 예약을 통해 매일 정해진 인원만 케이블카를 탈 수 있고, 사진과 영상 촬영도 엄격하게 제한됐다. 그래서 케이블카를 타기 전스마트폰 카메라 작동을 멈추게 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야 했다. 어딜 가나 인증샷을 찍기 바빴는데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이야기에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매표소에서 신분증을 확인받고 셔틀버스에 올라 50분쯤 산길을 달리니 드디어 비밀의 숲 백암산케이블카 입구에 닿았다. 해발 1,178m의 백암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두 눈에 들어오는 풍광에감탄이 절로 나왔다. 산 능선이 굽이굽이 겹쳐져 그야말로 신선이 그린 수묵화인 듯 혼자보기엔 아까운 비경이다.

실제로 케이블카를 같이 탄 여행객 중에는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인 어르신이 많았다. 대한민국 최북단 케이블카를 타고 15분 남짓 걸려 정상에 오르니 DMZ(비무장지대)가 코앞이었다. 남쪽의 평화의댐과 북쪽의 임남댐(금강산댐)까지 시선이 닿았다. 겨울바람이 미세먼지까지 깨끗이 몰아낸 날이면 북쪽으로 53.11km 거리의 금강산까지 볼 수 있다고 했다. 문화해설사에게서 국민 가곡 ‘비목’이 만들어진 사연도 들
을 수 있었다.

이곳 비무장지대에서 군 생활을 한 한명희가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보고 지은 시에 곡을 붙인 것.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아픈 역사 속 비목이 세워진 현장도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가기 전 스마트폰 카메라를 작동할 수 있게 앱을 삭제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허락해준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는 두 군데뿐이어서 아마 이곳을 다녀간 모든 이의 기념사진은 똑같을 것으로 짐작한다. 대신 내려가는 길에는 사진 촬영이 가능한 구간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다.

평화의 댐

백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평화의댐을 가까이에서 보려면 화천체육관에서 다시 1시간 가까이 산길을 달려야 한다. 경사도 있고 워낙 구불구불한 길이어서 차를 천천히 몰아야 하는데, 그래서 산세를 감상하기는 더 좋다. 꽃이 만발하는 봄이나 단풍이 곱게 든 가을이었다면 드라이브 코스로도 추천할 만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평화의댐은 북한 임남댐의 수공을 막기 위해 30년 걸려 완성한 댐으로 1 임남댐보다 저수량이 1,000만 톤 더 많다. 1987년 댐 건설 당시 정치적 목적으로 과장된 정보가 있었다는 사실이 훗날 밝혀지기도 했지만, 그와 별개로 홍수를 관리하고 임남댐의 방류를 막아내는 평화의 상징임은 분명하다. 평화의댐 주변에는 가볼 만한 시설이 많다.

물문화관에서는 평화의댐 건설 배경과 구조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서 댐 건설 당시 국민성금을 모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너나 할 것 없이 성금을 내던 때여서 얼마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동전 몇 개로 마음을 보탰던 것 같다. 세계평화의종은 전쟁을 겪은 60여 개국에서 수집한 탄피를 모아 만든 종으로 평화를 상징한다.

성금 500원을 내면 타종도 해볼 수 있다. 인근 염원의종은 나무로 만들어 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국제평화아트파크는 퇴역한 탱크로 아기자기한 공원을 조성해놓았다. 평화를 기원하는 손을 맞잡은 조형물과 탱크 미끄럼틀 등이 이색적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에서 더는 전쟁이 일어나지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졌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에게도, 지금도 전쟁을 치르고 있는 세계의 여러 나라에도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하며 발길을 돌렸다.

겨울왕국 화천

화천은 겨울 왕국이다. 한파 소식이 있는 날이면 영하 20℃까지 떨어지는 건 예사다. 화천을 찾은 날도 영하의 날씨가 이어진다는 뉴스에 걱정이 앞섰지만, 오히려 겨울이어서 더 행복한 여행지가 화천이란 생각이 든다. 한낮 햇빛을 쐬며 걷기 좋은 산책길도 많고, 얼음이 얼면 빙판 위에서 산천어 낚시의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겨레리 수목공원

SNS에서 핫 플레이스로 유명한 거례리수목공원을 찾으니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크골프를 즐기는 어르신이 많았다. 평소 큰 관심을 두지 않아 알지 못했지만, 요즘 중년 사이에서 인기인 파크골프의 성지가 이곳이라고 한다. 거례리수목공원에 36홀 규모로 조성한 산천어파크골프장은 공식 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으로 전국에서 찾는 이가 많다. 대회 시즌에는 하루 500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라고. 올해 시즌은 이미 마감됐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는 날에는 여전히 파크골프를 즐기려는 사람 모여든다. 잔잔한 북한강변을 바라보며 호쾌한 샷을 날리는 기분은 직접 해보지 않았어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여럿이 짝을 이뤄 파크골프를 즐기는 이들 사이에선 수령이 400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운치를 더한다. 여러 드라마와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일명‘사랑나무’로 불리는 화천의 명물이다.

인근 붕어섬에서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겨울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춘천댐 담수로 생긴 작은 섬으로 고요한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곳곳에 놓여 있어 추억 사진을 남기기도 좋다.

화천 살랑교

화천읍 대이리와 간동면 구만리를 연결하는 인도교인 살랑교는 물 위에 떠 있는 ‘숲으로다리’와 함께 걷기 좋은 길이자 자전거길로도 최고로 꼽히는 코스. 살랑교 중간에 설치된 스카이워크 존에서는 발밑으로 펼쳐지는 아찔한 북한강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추위에 몸을 녹일 곳이 필요할 때는 맛집이 모여 있는 화천중앙시장을 찾으면 된다. 뚝배기 한가득 인심을 담아주는 국밥집, 매일 빚는 손만두가 맛있는 가게, 40년 전통의 막국숫집이 이곳에 모여 있다. 시장에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찾아간 곳은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산천어커피박물관이다. 커피 유물 수집가 제임스 리 관장이 오랜 기간 정성을 다해 모은 유물을 감상하고 세계의 커피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향긋한 드립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사계절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산타클로스우체국 대한민국 본점도 화천에 자리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신나는 캐럴이 울려 퍼져 즐거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여기에선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데,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핀란드 로바니에미에서 산타할아버지의 답장을 받아볼 수 있다. 산타클로스의 단짝인 루돌프와 함께 두고두고 추억할 사진한 장을 남기고 돌아섰다.

화천 산천어 축제

12월의 화천은 산천어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축제 기간에는 산천어 얼음 낚시뿐 아니라 얼음 위에서 축구를 하거나 신나는 얼음 썰매도 탈 수 있다. 읍내 곳곳에 마련된 행사장에서는 얼음 조각 작품을 감상하거나 동심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체험에도 참여할 수 있어 기대된다. 진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는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함께 즐즐기며, 미래를 응원하는 사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화천 여행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추억하고 즐길 거리가 많으니 벗과 함께하는 시간이 야속하리만큼 빠르게 흐르는 곳이다. 축제가 시작되면 다시 한번 찾아오자는 약속은 올겨울을 설렘과 기대로 보낼 이유가 되지않을까.

-대전소식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