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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국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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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깊이를 체득하는 방법 중 하나가 여행이다. 여느 때와 같은 하늘과 들녘, 그 k자리 그대로인 공간과사람, 반복되는 계절이라도 여행을 통해 다시 만나면 감회가 새롭다. 6년 전 순천을 찾았다.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과 자원의 보고인 갯벌, 도시재생 사업으로 역동하는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다시 찾은 순천은 여전히 젊고 곱고 흥미로웠다.

헤어질결심

순천만 국가정원

한창 축제가 펼쳐지는 순천만국가정원부터 먼저 들렀다. 우리나라 제1호 국가정원으로 2013년 전 세계가 주목한 박람회를 성대하게 치르고, 10년 만에 다시 열린 축제d의 장이다. 4월 1일 개막해 오는 10월 31일 폐막을 앞두고 있으니 미룰 수 없는 여정이다. 장장 7개월 여를 달려온 박람회 현장은 예상한 만큼 흥미로웠다.

‘정원에 삽니다’를 주제로 순천만국가정원과 더불어 도심과 순천만습지까지 3개 권역에서 펼쳐지는 박람회지만, 역시 순천만국가정원이 하이라이트다. 이곳은 순천만습지와 도심 사이 완충지대로 순천만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개발했다. 112만 m²에 f이르는 곳을 거대한 정원으로 조성해 나무와 꽃을 심어 전 세계 각국의 특색 있는 정원과 호수로 가꾸고 수목원과 습지센터를 세웠다. 돌아보는 데 반나절 가까이 걸릴만큼 광활하고, 인공 정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곳곳을 거닐며 찰나의 조각조각을 사진으로 남겼다. 화창한 가을 햇살과 신선한 바람이 동행하니 유럽의 이름난 정원을 거니는 것 못지않게 즐거웠다. 동편과 서편을 잇는 꿈의 다리도 인상적이다. 설치미술가강익중의 유리타일로 외벽을 꾸민 꿈의 다리 안은 세계 16개국 어린이 14만여 명이 보내온 그림으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어린이의 소중한 꿈이 담긴 그림 하나하나를 살피다 보니 어린 시절의 순수하던 마음이 떠올라 흐뭇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어르신이나 아이와 동반한 관람객이라면 순천만국가정원에서 순천만습지까지 연결하는 스카이큐브를 이용하면 정원과 습지를 편안하게 오가며 박람회를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놓인 소형 무인궤도차라는 사실이 흥미로운 미니열차다. 순천만국가정원이 인간의 위대한 역량을 보여준다면,순천만습지는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막 붉은빛으로 물드는 갈대밭 사이로 들어서니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그락사그락 스치는 갈대 소리가 음악처럼 감미롭다. 갈대와 바람이 만들어낸 하모니 덕분인지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도 지루할 틈이 없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습지에는 철새 희귀종인 흑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등이 찾아들고 농게, 칠게, 짱뚱어 같은 갯벌 생물이 한데 어우러져 서식한다. 환경의 중요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며 순천만습지의 위상이 높아졌다. 이곳은 현재 습지와 습지의 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국제 환경 협약인 람사르협약에 의해 세계 5대 연안 습지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순천만습지의 드넓은 갯벌과 갈대밭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순천부읍성, 순천 문화의 거리

순천의 또 다른 매력은 풍요한 자연 못지않게 매력적인 역사와 문화를 품은 도시라는 것이다. 남도 교통의 요충지로 일찍이 유서 깊은 문화를 꽃피웠고, 순천부읍성과 향교,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 등 지역의 오랜 문화와 역사를 증명하는 명소가 곳곳에 남아 있다. 오랜 역사의 가치를 살려 문화촌으로 거듭난 곳이 문화의 거리다. 영동·행동·금곡동 일원에 조성한 문화의 거리는 얼핏 시골의 전형적인 구시가처럼 보이지만 골목골목을들여다보면 특별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오랜기간 방치된 공간은 SNS 유명 맛집과 카페로 재탄생했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가 활동하며 전시와 공연, 영화제 같은 다채로운 문화 행사도 수시로 열린다. 아기자기한 갤러리와 공방에서 즐길 만한 체험 거리도 많다.

순천드라마 세트장

순천드라마촬영장은 아련한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명소다. 3만9,670m²(약1만 2,000평) 규모로 조성한 세트장에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1960~80년대 서울 달동네를 생생하게 재현해놓았다. 이곳에선 교복을 빌려 입고 학창 시절의 소년과 소녀로 돌아간 듯한 이색 경험을 할 수 있다. 추억의 음악 감상실과 극장, 옛 상가 풍경이 5060세대에게는 그리운 시절의 향수를, 그보다 젊은 세대에게는 아날로그의 신선한재미를 느끼게 한다. 2006년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사랑과 야망>, 배우 수애가 열연한 영화 <그해 여름>과 <님은 먼 곳에>, 2010년 국민 드라마로 통한 <제빵왕 김탁구>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헤어질결심의 그 장소, 송광사

순천에는 천년 고찰이 두 곳이나 있다. 많은 선승을 배출한 태고종의 본산 선암사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승 대덕을 배출해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삼보사찰로 꼽히는 송광사다. 두 곳을 다 둘러보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송광사를 찾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본 이후로 내내 궁금하던 곳이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부정과 의심을 품었던 남녀 주인공은 송광사 종고루에서 법고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서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며 마음을 연다.

우산을 나란히 쓰고 송광사 설법전 계단을 걷는 모습이나 사천왕상 앞에서 여자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주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헤어질 결심>의 명장면을 떠올리며 찾은 송광사는 영화 이상의 감흥을 전해주었다. 주차장에서 10여 분 남짓 걸어 올라가면 대나무숲과 아름드리 삼나무, 편백나무가 울창한 산중에 고고한 운치를 내뿜는 송광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에 위치한 우화각을 마주한 순간부터 감탄의 연속이다.

연못 위에 세운 누각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경내에는 국보인 목조 삼존불감과 고려고종제서, 보물 화엄탱화 등 불교 문화재 6,000여 점이 남아있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자주 찾은 불일암 무소유길에서 세상 시름을 잊고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는 경험도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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