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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으로 가는길, 북한강 팔당호, 그곳 파주

여름으로 가는길. 북한강

팔당호를 낀 양평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가는 두물머리를 넓게 품는다. 두물머리에서 출발해 청평까지 북한강을 달리거나 여주까지 남한강을 누빌 수 있다. 북한강을 먼저 달렸다. 팔당호 너머 북한강로~경춘로를 타고 달리다 신청평대교를 건너 문호리를 거쳐 두물머리로 돌아오는 코스다.

평일이라 가능한 선택이다. 주말이면 차도 많고 자전거도 많고, 산책하는 인파까지 많아 한번 다녀온 이후로는 도무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평일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게 사실이지만, 역시 유명 카페나 정원은 사람들이 명당을 꿰차고 있다.

‘물의 정원’에서 차를 세웠다.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도 제법붐빈다. 마스크로 얼굴을 덮고 선글라스를 쓰고 팔토시까지 꼈으면서도 양산까지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거닌다. 묵직한 카메라와 삼각대를 멘 사람도 여럿이다. 파라솔 아래 캔버스를 펴고 풍경을 담는 예술가도 곳곳에 있다. 사람으로 향하던 시선은 물가에서야 겨우 거둘 수 있었다. 햇살이 뜨거운데도 하늘은 어쩐지 가을만큼 파랬고, 물 역시 그만큼 푸르다. 6월 초에는 개양귀비와 개망초가 온통 희고 붉게 피었는데, 지금쯤이면 모두 지고 신록으로 뒤덮였으리라. 건너편 산들은 녹음이 짙다 못해 거뭇 거뭇해 보인다.

후끈한 열기에 둘러싸여 있지만, 수려한 풍광 덕분인지 개운하게 느껴진다. 어느 피크닉객에게 감정을 이입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버드나무 아래 대나무 자리를 펴고 맨발로 앉아 얼음 탄 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부러움에 눈을 뗄 수 없는 장면이다. 살얼음 낀 막국수로 허기를 달래고 ‘파이너스 베뉴’로 향했다. 소나무 정원과 카페, 사진 스튜디오를 겸한 스폿이다. 카페에 들어 서기 전 정원을 한 바퀴 돈다. 소나무를 띄엄띄엄 재배하는데, 형태와 문양이 하나하나 도드라져 멋진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듯하다. 사뭇 엄숙하기까지 해 자연 정원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신청평대교를 건너 두물머리를 향해 달린다.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구간을 잠시 지난다. 양지와 음지의 온도 차가 금세 느껴진다. 10여 분 달려 ‘이정웅 스페이스’에서 잠시 멈추고, 또다시 10여 분을 이동해 ‘구하우스’에서 내렸다. 이정웅 스페이스는 ‘붓의 화가’ 이정웅의 역동적인 먹 작품을 전시하는 화랑이자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이고, 구하우스는 예술과 디자인이 주는 즐거움을 생활 공간 속에서 만날 수 있도록 ‘집’을 콘셉트로 조성한 미술관이다. 강변도로를 따라 수많은 명소가 있지만, 몇번을 재방문한 경험상 두 곳에서만큼은 실망할 일이 없다고 자신한다. 둘 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또 한 곳, 커피에 조예가 깊다면 두 갤러리 중간 지점 ‘엔로제’를 추천한다. 드립 커피 전문점으로, 직원 모두 전문 바리스타다. 손님 앞에서 드립 커피를 내려줄 정도로 자부심이 있으며, 원두도 입맛에 맞춰 자신 있게 추천한다. 풀 냄새와 과실 냄새, 장미 향이 혼재된 무르익은 여름 속에서 깊은 계곡을 마주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사뭇 번잡한 문호리를 지나 두물머리를 향해 간다.

문호리부터 양수리까지 이어지는 352번 도로에서 드라이브의 정점에 다다른다. 팔당 상수원보호구역이기에 건물 하나 없고 가드레일도 낮다. 아름다운 풍광에 안겨 달리는 동안만큼은 운전대를 잡는 일도 흥이 난다. 도심에 들어서 신호 대기하는 순간부터는 다시 누리지 못할 여유이기에 눈에 담기는 모든 순간을 최선을 다해 만끽한다.

남한강을 따라서

북한강의 이미지가 도시적인 데 반해 남한강은 목가적이다. 상대적으로 개발의 여파가 덜 닿아서다. 세미원에서 이포보, 여주보를 거쳐 영월루까지 강에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며 평야를 가로지르고 산골을 오르내린다. 웅장한 보 앞에 다다라서야 문명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물길을 막은 보는 수력발전소이자 전망 공원, 거대 조형물로 두루 역할을 한다. 이포보 위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그 흔한 카페도 들르지 않고 내달린 참이다. 보 위는 그늘진 곳 하나 없이 쨍한 햇살이 내리쬔다. 전망 테라스의 파라솔 아래에서 벗어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보 위에는 둥글둥글한 은빛 금속 구조물이 장식돼 있다. 수문을 여닫는 권양기를 감싸는 조형물이다. 백로알을 상징한다는데, 언뜻 백로알의 무엇을 닮은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백로알은 타원형이고 순백색에 가깝다. 조형물을 멀리서 내다보면 타원형 이기는 하다. 백로는 물론 왜가리, 민물가마우지가 날개를 쫙 펼치고 날아가는 장관이 흔하니 이를 상징화할 만하다고, 애써 이해해본다.

스트레칭을 한 뒤 여주보를 향해 다시 달린다. 이포보가 새를 상징화했다면 여주보는 세종대왕을 모티프로 설계했다. 자격루를 재해석해 하부 기둥을 제작했고, 인근 광장은 해시계 앙부일구를 형상화해 조성했다. 인공 조형물에는 이렇다 할 감흥이 없건 만, 강변을 화사하게 뒤덮은 금계국에는 가슴이 일렁인다. 어떻게 피어나 이렇게 아름다운지 경이롭기만 하다.

꽃밭 사이를 파고든 사진가들도 분명 같은 마음이리라.

30℃를 훌쩍 넘긴 이른 무더위에 차에서 내린 시간은 최소화했다. 체력을 아낀 건 영월루에 오르기 위해서였다고 누각에 오르는 동안 생각했다. 저녁 7시 해 질 무렵이었고, 황금빛으로 달아오른 남한강이 한눈에 펼쳐졌다. 웨이크보드가 물살을 거칠게 가르는 동안 청록색 자국이 새겨졌지만, 이내 잔잔해지고 금가루로 뒤덮인다. 아득하게 먼 곳, 강물의 소실점에 시선을 두고 멍하니 사색하다 이마에 열기가 식을 무렵 내려왔다. 영월루 건너편에는 신륵사국민관광지가 있고 인근에 세종대왕릉도 자리한다.

세미원이 있는 양수리에서 영월루까지, 휴식 시간을 모두 포함해 편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훌쩍 떠나 조용히 드라이브 하기 좋은 코스다. 여름 나절에는 분명 걷기보다 운전하기가 훨씬 편하다.

그곳, 파주

서울에서 파주까지 자유로는 아침저녁으로 늘 막힌다. 도로가 강폭만큼 넓은데도 어마어마한 차량이 꽉꽉 들어찬다. 행주산성에 올라 한강을 한눈에 조망하고 내려와 ‘파주출판단지’와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쉬어 가듯 놀았다. 어차피 ‘달리는 맛’은 문산에 가까워져야 느낄 수 있을 터다.

파주출판단지에는 천장 끝까지 책으로 꽉 찬 ‘지혜의 숲’을 비롯해 크고 작은 북카페가 자리한다.책 내음에 안긴 채 머무르기만해도 정신이 고요해지는 듯하다. 차분해진 기분으로 언덕 위 카페 ‘라플란드’까지 오솔길 따라 이동한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 나와 유명세를 탄 카페인데, 2층에 오르면 한강까지 아득하게 펼쳐진 풍광을 마주할 수 있다. 다만 커피 맛보다는 시각 만족을 기대하고 방문하기를 권한다. 헤이리 예술마을 인근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황희선생유적지인 반구정으로 향했다. 건물 하나 없는 강변이 생경하다. 물가 따라 철책을 둘렀는데, 강 건너편도 마찬가지다. 철책과 철책 사이 비포장도로 따라 군용 장갑차가 수시로 오간다. 휴전선이 지척임이 실감난다.

황희선생유적지는 관직에서 물러난 황희 선생이 여생을 보낸 곳이다. 유적지는 공원으로 단정하게 조성해놓았다. 영정을 모신영당과 유물을 전시한 방촌기념관이 아담하게 자리한다. 잔디위 울창한 나무가 그늘을 짙게 드리웠다. 강가 옆 낮은 언덕 위에 정자 2개가 있다. 20계단쯤 위 언덕에 오르자마자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린다. 일행인 듯 뒤따라온 인파가 “여긴 태풍이 부네“, “모자 날아간다”며 호들갑이다. 정자에 먼저 자리 잡은 사람들의 웅성거림 사이에서, “아유 행복한 시간이다”라는 목소리가 유독 도드라지게 들려온다. 한번 엉덩이를 깔고 앉으니 좀처럼 일어날 생각이 안 든다.

태백산맥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한강을 지나 서해에 다다르면서 넓고 얕게 퍼진다. 남한강과 북한강은 푸른빛이고, 임진강은 흙빛이다. “물같이 살아라.” 물처럼 유연한 사람이어야 생이 편안하다고, 언젠가 할머니는 떼쓰는 손녀에게 말했다. 어른이 되고도 어릴 적 고집이 슬그머니 발휘될 때, 할머니의 꼿꼿한 목소리가 간혹 귓가에 울리고는 한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다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그 말이 옳다고는 어렴풋이 이해해가고 있다. 한강을 바라보며 할머니의 목소리를 또 한 번 들었다. 물가에서 사념을 흘려보내던 중 떠오른 옛 기억이다. 버들가지가 물 위를 톡톡 건드리는 장면, 얕은 파동이 오래 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별별 추억이 다 떠올랐다. 물 위로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면 갓 빨아 말린 뽀송뽀송한 이불 위에 사지를 펴고 누운 듯했다. 일렁이는 물결을 멍하니 보다 보면 감정도 감각도 서서히 지워져 백지상태가 되는 듯했다. 머릿속에 우글거리던 생각들도 이내 흘려보냈다. 어쩌면 바람이 훔쳐간 것일지도, 햇살에 말라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물 같다는 건 이렇게 가벼운 상태라는 걸까. 그 생각마저 이내 잠잠해지고 만다. 여행의 묘미를 이토록 진하게 느끼기도 참, 오랜만이다.

-대전소식포스트 김정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