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에서 평론가와 대중은 언제나 괴리가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위대한 문학가들이 꼽는 최고의 소설이지만, 이를 제대로 읽은 대중은 거의 없습니다. 지나치게 길고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음악에서도 그렇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대중의 취향과 거리가 먼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죠. 대중의 음악적 이해는 대부분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에서 멈춰 있고 클래식좀 듣는다는 이들도 말러나 브루크너 정도에서 멈추죠. 그 이후는 전문가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이보다 더 대중적인 예술인 영화라고 별반다르지 않습니다.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는 영화가 대중에게 외면 받는 일은 매우 흔합니다.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박찬욱의 <헤어질결심>도 그렇죠. 수상실적도, 평단의 평도 호평 일색이었지만 사실 흥행엔 실패했습니다. 재관람객이 제법 많았음에도 이 영화는 결국 200만명을 넘지 못했어요.
이보다 조금 앞서 개봉한 <범죄도시2>가 1000만 관객을 모은 것과 상당히 대비되죠. 그만큼 평론가와 대중의 선택을 동시에 받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2022년 그런 작품이 있으니 바로 이 작품입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평론가의 극찬이 폭죽처럼 터지는 이 영화는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며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완벽히 잡았죠.
영화가 아름다운 건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가 그토록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던 이유죠. 우리가 상상으로 만 떠올릴 수 있는 세계를 눈 앞에 펼쳐 놓을 때 우리는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때로는 생각할 수 없는 모든 것들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영화의 세계관은 ‘멀티버스’를 바탕으로 합니다. 낯설 수 있지만 다행히 어벤져스에서 소개가 제법 된 개념 이죠. 간단히 말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와 유사한 또 다른 지구가 아주 많이 존재한다는 설정입니다.
영화는 이 멀티버스를 아주 유려하게 다룹니다. 단순히 개념만 따온 것이 아니라 영화에 완전히 녹였습니다. 주인공 에블린(양자경)이 다른 지구의 에블린과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다른 세계의 위협이 어떻게 에블린이 살고 있는 현재의 지구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에블린은 영화 속에서 그야말로 ‘모든 것’ 이 되곤 합니다. 다른 평행우주의 에블린의 삶을 체험하게 되는 방식으로요. 때로는 영화배우로, 때로는 무술인으로, 때로는 요리사로, 때로는 핫도그로, 때로는 돌멩이로살죠. 무엇인가 이상한 게 있었나요?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완벽한 핍진성을자랑합니다. 에블린이 그 어떤 무엇의 삶을 삶더라도 관객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 일 수 있도록 구성했죠.
멀티버스에서 변하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송두리째 바뀌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에블린이 사는 지구를 위협하는 건 다른 지구에 살고 있는 ‘누군가’입니다. 에블린의 지구에 사는 누군가와 같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죠. 빌런의 목표는 당연히 세계의 멸망입니다.
그는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을 이미 경험한 인물이고, 그에게 남은 것은 허무밖에 없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것이란 아무 것도 없어요. 오직 온전한 죽음만이 자신과 이 세상에 안식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세계를 넘나들며 파괴를 일삼습니다.
에블린은 그런 무지막지한 괴물을 상대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지구를 지키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빌런과 에블린의 전쟁은 그야말로 모든 곳에서 일어납니다. 때로는 현대식 건물에서, 때로는 사무실에서, 때로는 주방에서, 또 때로는 절벽 위에서 이루어지 죠.
영화는 이러한 변화무쌍함을 화려한 시각 효과와 함께 보여 줍니다. <화양연화>와<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라따뚜이> 등의 패러디도 이어지죠. 영화는 이렇게 때론 어지러울 정도의 속도로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이게 대체 무슨 영화 인가 싶을 것 같습니다. 포스터를 봐도, 제목을 봐도, 이 글을 봐도 정신없고, 어지럽고, 복잡한 영화일 것 같기 때문이죠. 이러한 B급 영화는 그 끝이 난삽한 경우가 대다수이고요.
심지어 이 영화는 이 많은 것들을 한 번에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2시간에 온전히 욱여넣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발산하는 것은 때론 충분히 멋지거든요. 마치가을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처럼 말이에요.
우리의 삶은 모두가 한 번 뿐이고, 모두 한곳에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은 언제나 어디서나 수백가지의 마음과 함께 하죠. 우리는 때론 우리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고, 이해할 수 없는행동을 하곤 하니까요. 이 영화는 그런 우리의 마음을 온전하게 들여다본 것이 아닐까요. 김수영 평론가의 말처럼 한 사람의인생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선 수백개의우주가 필요할테니까요.
에블린은 과연 지구를 구할 수 있었을까요. 세상을 넘나들며 빌런을 막고 또 그를 이해하기 위해선 몇 개의 우주가 필요했을까요. 정답은 영화 속에 있습니다.